▲ 지난 6월 ‘로컬라이즈 군산’ 최종 발표회에 참석한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SK E&S 제공
(4) SK E&S ‘로컬라이즈 군산’
지역 연계 사회공헌프로젝트
스타트업 24개 팀 창업 교육
전문가 현장투입 노하우 전수
군산관련 탐험추리게임 제작
소셜 다이닝 운영 관광지화
지역상권에 큰 활력소 작용
“스웨덴 말뫼처럼 재기 견인”
전북 군산시 구도심(舊都心) 영화동은 이채로운 공간이다. 일제강점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건물이 한데 어우러져 있을 뿐 아니라, 과거 군산이 공업 도시로 얼마나 활기찬 곳이었는지 엿볼 수 있다. 지금도 영화동 주변에는 녹슬고 오래된 간판이 달린 노래방과 술집이 즐비하다. 이곳의 한 주민은 “군산에 조선소와 자동차 공장이 있던 몇 년 전만 해도 구도심에는 사람이 많아 걷다가 어깨를 부딪치는 장면이 흔했다”고 말했다. 군산은 2017년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중단에 이어 지난해에는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폐쇄되면서 후폭풍을 정면으로 맞았다. 2015년 27만8400명이던 군산 인구는 지난해 27만2600명으로 감소했다. 주민들이 군산 신도시나 타지로 옮기면서, 한때 화려했던 구도심에는 어두운 그늘이 짙게 깔렸다. 지금도 구도심 상가 곳곳에는 임대문의를 알리는 표지판이 새 주인을 애타게 찾고 있다.
이처럼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군산에 한 줄기 빛이 들어온 건 지난 3월이다. SK그룹 에너지 계열 기업 SK E&S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위한 거점을 군산에 조성하고 도시재생사업에 나선 것. ‘로컬라이즈(Local Rise) 군산’이라고 이름 붙인 소셜벤처(창업으로 사회문제 해결하는 기업) 육성사업 프로젝트인데, 민간기업이 지역 도시재생사업을 주도적으로 하겠다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도시가스 등 지역 기반 사업을 해 온 SK E&S의 시도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SK그룹의 철학과 맥을 같이한다. 제조업 부진으로 침체에 빠진 군산 지역의 재생에 관심을 가지면서 지역과 연계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회공헌의 하나로 이 프로젝트는 탄생했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5월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소셜밸류 커넥트’행사에서 로컬라이즈 군산 프로젝트에 참가한 스타트업(디자인 뜨레)이 디자인한 군산섬김을 구매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SK E&S 제공 |
지난 1일 찾은 군산시 영화시장 사거리. 벽면이 넓은 유리창으로 마감된 3층 회색 건물의 1층 카페에서 현대적 감각의 음악과 은은한 커피 향이 흘러나왔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이곳에 둥지를 튼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노트북 앞에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카페를 찾은 이웃 주민과 관광객의 표정에서도 여유가 느껴졌다. 이 건물은 ‘로컬라이즈 타운’으로 불린다. SK E&S가 지원해 만들어졌고, 현재 스타트업 교육 전문기업 ‘언더독스’가 운영을 맡고 있다. 이슬기 언더독스 디렉터는 “원래 이 건물 1층에는 생선가게가 있었고 2·3층은 사무실과 가정집이었다”며 “이것을 개조해 1층은 카페, 2층은 공유 오피스, 3층은 미팅룸과 부엌, 옥상은 파티를 열 수 있는 휴식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고 설명했다. 언더독스는 로컬라이즈 군산에 참여한 스타트업 24개 팀 70명의 창업 교육을 맡고 있다. 언더독스는 창업 경험이 있는 코치들을 현장에 투입해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기업의 전폭적인 지원과 교육 전문가의 도움을 받은 20∼30대 주축의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군산 지역 경제에 활력소가 되고 있다. 스타트업 ‘비어드벤처’(Be Adventure)는 군산의 숨은 이야기를 스마트폰으로 풀 수 있는 게임을 개발해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잃어버린 기록, 로스트’라는 제목의 이 게임은 군산 도심에서 미션을 해결하고 단서를 찾고 추리를 하며 지역을 탐험하는 추리물이다. 이용자가 각각의 미션 키트를 로컬라이즈 타운 등에서 구매해 내려받은 앱을 사용하면 퀴즈를 풀면서 군산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박지혜 비어드벤처 매니저는 “퀴즈를 모두 풀면 커피숍 등 지역상권과 제휴를 맺고 발급받은 할인 쿠폰을 제공하고 있다”며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이 늘면서 지역경제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고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지역 내 커뮤니티형 놀이문화를 개발 중인 스타트업 ‘와이랩컴퍼니’(Y-Lab Company)는 주민 이주로 주거 환경이 악화한 군산 개복동에 거점 사무실을 마련하고, 지역경제 살리기에 몰두하고 있다. 이들은 참여형 소셜다이닝(SNS를 통해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 식사를 즐기며 인간관계를 맺는 자리)과 지역의 유휴공간을 활용한 커뮤니티형 호텔 운영 등으로 군산을 젊은이들이 찾는 관광지로 키워나갈 계획이다. 김수진 와이랩컴퍼니 대표는 “개복동은 과거 군산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사람이 잘 찾지 않는 곳이 됐다”며 “군산의 가장 열악한 지역에 다양한 패키지 상품을 통해 생기를 불어넣겠다”고 밝혔다.
▲ 전북 군산시 영화동에 있는 ‘로컬라이즈 타운’. 이곳에서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동고동락하며 일하고 있다. SK E&S 제공 |
로컬라이즈 군산 프로젝트로 제2의 기회를 잡은 스타트업도 있다. 군산 관련 배지 등 굿즈(Goods·특정 기획상품)를 디자인하는 ‘디자인 뜨레’(Design Trait) 최창희 대표는 3년 전 군산에 입성했다가 사업 실패로 고향인 경기 안양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로컬라이즈 군산 프로젝트에 가까스로 합류하면서 새 삶을 살고 있다.
최 대표는 “혼자 회사를 운영할 때는 정보도 부족하고 활로가 부족해 회사를 키우는 데 한계가 있었다”며 “하지만 SK와 언더독스의 지원을 받아 군산에 다시 정착할 수 있게 됐고, 지금은 1인 기업이 5인 기업이 됐다”고 설명했다.
지역 상권도 이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 생기를 잃어가던 영화동 시장 일대에는 서울 홍대 거리에 있을 법한 세련된 외국식당과 제과점 등이 입점했다. 이곳에서 스페인식당을 운영하는 고모 씨는 “20∼30대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영화동에 정착하면서 시장에도 활기가 불기 시작했다”며 “군산 주민들의 식당 방문도 덩달아 늘면서 식당 운영시간도 자연스럽게 늘게 됐다”고 말했다. SK는 군산이 스웨덴 말뫼처럼 다시 재기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최은정 SK E&S 소셜밸류본부 매니저는 “로컬라이즈 군산은 2003년 조선업이 몰락하면서 수만 명이 일자리를 잃어 한때 죽음의 도시로 내몰린 스웨덴 말뫼가 스타트업 활성화를 통해 도시가 재생되고 일자리를 다시 창출한, 성공한 사례를 벤치마킹했다”며 “군산이 제2의 말뫼가 될 수 있도록 함께 뛰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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