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창업을 준비하는 대학생 혹은 예비창업가들을 마주할 때면 지난 나의 세월이 떠오를 때가 많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기만의 스토리를 가지고 자신이 선택한 지역에서 고군분투한다는 점이다. 나 또한 축구가 좋아 16세까지 선수 생활을 하다가 남들보다 뒤늦게 학업을 시작한 케이스다.

운동을 하거나 운동을 그만둔 학생들에게 시쳇말로 ‘돌머리’와 같은 표현을 쓰며 ‘머리가 나쁘다’고 표현하는 당시의 문화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운동도 머리가 좋아야 잘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운동을 통해 배운 의지력이 학업 전선에서도 유효하다는 것을 후발주자로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힘들 때도 많았지만 선수 시절을 통해 나의 한계치에 도전하며 누적해온 시간들은 실제 학업에도 좋은 연료로 활용됐다. 포기하지 않았기에 유학을 떠나 호주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그후 영국으로 넘어가서 스포츠 관련 전공 석사 졸업장도 따낼 수 있었다.

영국에서는 프리미어리그 구단 혹은 관련 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시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당시만 해도 취업 공고 사이트가 많지 않았던 터라 직접 이력서를 뽑아 보안 요원을 제치고 유럽 구단 오피스에 뛰어 들어간 기억, 영어로 소문을 작성해 50개가 넘는 구단에 콜드 메일을 보낸 기억 등 내가 선택한 분야에서 살아남고자 했던 그때의 감정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이후 영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스포츠 에이전시와 국내 대형 스포츠구단에서 경험을 쌓고 마침내 창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창업 초기 기간은 운동을 그만 둔 직후 처음 학업에 임할 때 만큼 힘들었다. 하지만 특유의 언더독 마인드로 남들보다 늦게 출발하거나 속도가 느릴지라도 포기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특히 예비창업자, 혹은 창업씬에서 언더독으로 평가 받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언더독스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언더독이라는 말 자체가 스포츠씬에서 유래되었고 나의 정체성과 비슷하다고 느껴왔는데, 창업씬에도 이러한 방향성을 가진 기업이 있다니 창업 코치로 합류하길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최근에는 언더독스와 하나 소셜벤처 유니버시티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창업을 꿈꾸는 예비 창업가들에게 2달간 멘토링을 진행하게 됐다. 내가 전담한 충청권역의 전통문화대학교 창업가는 서울 및 수도권에 있는 창업가들과는 색이 많이 달랐다. 지역에 특화된 아이템과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비교적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지역에서 자신만의 스토리를 묵묵히 써내려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나의 지난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아 감정이입이 되곤 했다. 특히, 부여에서 옻칠이라는 우리나라의 전통문화기법을 활용해 인테리어 산업에 뛰어들겠다는 20살 청년의 남다른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수도권에서 각종 4차산업 요소를 가미하여 단기적인 투자 계획을 수립하고 빠르게 피봇하는 창업가들과는 방향도 결도 달랐다.

그렇게 지역 예비 창업가들을 접하는 동안, 축구가 좋아 호주와 영국의 작은 도시에서 수년간 ‘맨땅에 헤딩’하다시피 했던 지난 나의 모습이 떠오르곤 했다. 지역 창업가들은 수도권의 창업가들 대비 생존율이 높지 않다. 성장 속도보다 지속가능성 자체에 더 의의를 두는 것도 이때문이다. 지속을 위해 다수의 커뮤니티 참여 혹은 지원금 확보에 초점을 맞추기도 하는데, 그러다 보면 되려 중심이 될 방향성을 잃거나 포기하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따라서 나는 로컬창업가들에게 지속가능성은 본인이 쌓아온 스토리와 차별성에서 나오는 것임을 강조하곤 한다. 스포츠 팀의 리더와 마찬가지로, 기업도 창업가의 철학과 스토리가 없으면 무너지기 쉽다. 그런 만큼, 창업 초기 단계에 자신만의 페르소나와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가능성과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역 커뮤니티에서 도움을 받는 것보다 도움을 주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모두에게 더 큰 기회가 됨을 강조했다. 나 역시 스포츠씬에서 유명 선수 뿐 아니라 언더독으로 평가 받는 선수에게 지속적으로 대가 없는 컨설팅을 진행해온 경험이 있다. 이러한 노력이 곧 모두가 상생함으로써 해당 산업이 커나갈 수 있는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로컬 창업씬에서도 자신만의 스토리를 써내려 가고 있는 예비 창업가가 서로 도움을 주며 묵묵히 언더독의 반란을 써내려 가기를 기원한다.

글‧천명재 / 언더독스 파트너 코치

스포츠 에이전시를 운영하며 국/내외 운동선수의 해외 이적 추진/협상 대행 및 매니지먼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언더독스 파트너 코치로 활동하며 운동선수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 예비창업자에게 경험을 전달하고, 동기부여를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있다.

※ 로컬게임체인저는 스타트업레시피와 언더독스가 공동 진행하는 로컬기자단이다. 다양한 지역 창업 생태계의 목소리를 담아 소개한다.

정용환 기자

원문보기 https://startuprecipe.co.kr/archives/56868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