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 코로나19는 질주하던 현대 사회에 제동을 걸고 우리 삶에 있어 정말 중요한 게 뭔지 돌아보게 했다. 건강·가족·배려·공존·사랑…. 인류의 역사는 돈과 물질만으로 여기까지 온 게 아니다.
1847년 프랑스 파리에서 출발한 보석·시계 브랜드인 까르띠에(Cartier)가 올해 화두로 던진 가치는 ‘여성’이다. 내년 3월까지 열리는 ‘두바이 엑스포’에 양성평등의 중요성을 알리는 ‘우먼스 파빌리온(별채)’을 지어 올렸을 정도다. 모두의 어머니, 내 가족의 절반. 코로나 전 일상처럼 너무나 익숙한 여성을 내세운 이유는 뭘까. 지난 2009년부터 까르띠에 코리아 최초의 여성 사장으로 활동 중인 김쎄라 사장을 만나 들어봤다. ‘쎄라’는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당찬 여성이 되라며 할아버지가 지어준 한글 이름이라고 했다.
- 남녀차별이 아직도 심각한가.
- “시야를 세계로 넓혀보면 여전히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하고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여성들이 많은 게 자명하다. 단적으로 1억3200만명의 소녀가 학교에 못 가고 인신매매 희생자의 65%가 여성과 소녀다. 글로벌 기업으로서 이런 세계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 여성 고객이 많아서 여성이 중요한가.
- “기업 입장에서도 전 세계 까르띠에 직원의 절반이 여성이고, 리더의 절반이 여성이다. 이미 1930년대에도 핵심 리더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여성이었다. 고객이든 직원이든 까르띠에는 170여년 간 여성들의 영감으로 발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쟌느 투상. 그는 불우한 소녀 시절을 딛고 1933년부터 1970년까지 까르띠에 디자인을 총괄하는 최고책임자로 활약했다. 코코 샤넬의 친구였던 그는 날카로우면서도 세련되고 강인한 이미지 때문에 표범이란 뜻의 ‘팬더’라는 애칭으로 불렸는데, 팬더는 까르띠에를 대표하는 디자인 소재가 됐다.
세기의 사랑으로 유명한 윈저 공작부인을 위해 만든 플라밍고 브로치를 비롯해 인도의 장신구에서 영감을 얻은 독특한 작품들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영화 ‘오션스8’에 등장하는 1500억원에 달하는 화려한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바로 쟌느 투상을 기리기 위해 까르띠에가 만든 ‘투상’이다.
- 한국의 양성평등 수준은 어떻게 평가하나.
- “사회 전반적인 인식이 정말 많이 진화했다. 중학생 딸이 있는데 특히 10·20세대의 양성평등 인식은 기성세대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하지만 개인이 역량도 펼치고 사회에 도움이 되려면 크고 작은 창업이 더 활발해야 한다. 이런 취지에서 까르띠에는 창업교육 기업인 언더독스와 손잡고 한국의 20~40대 여성이 창업하는 데 필요한 정보와 교육, 만남 등을 무료로 제공하는 ‘언더우먼 임팩트 커뮤니티’를 시작했다.”
국내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까르띠에는 2006년부터 본사 차원에서 여성 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매년 ‘까르띠에 여성 이니셔티브’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여기에서 뽑힌 24명은 약 3000만~1억원을 포함해 각종 유·무형의 지원을 받게 된다. 한국인 중에서도 지난 2019년 조연정 대표가 은퇴자들이 온라인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SAY 글로벌’ 플랫폼으로 극동아시아 지역 최종 우승자에 올랐다. 김 사장은 “숫자만 비교하면 한국 여성들의 신청이 많지 않지만 최종 결선 진출자 중엔 한국인이 많다”며 역량을 높이 평가했다.
- 일각에선 왜 여권만 강조하냐는 반감도 있다.
- “그게 핵심이다. 양성평등을 이루려면 결국 남녀가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여성들만 주장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동료로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와 이슈로 만들어 가는 게 정말 중요하다.”
실제 두바이 전시관에 새겨진 문구는 ‘여성이 번영할 때 인류가 번영한다(When women thrive, humanity thrives)’다. 정치·경제·과학·문화·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류 전체에 기여한 여성들의 업적을 소개해 모두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평등하단 건 누구는 많은 혜택을 받는데 다른 사람은 그렇지 못하면 행복하지 않은 거예요” 전시장에 온 9살 소년 레오나르도의 말은 어른들을 끄덕이게 한다.
김 사장은 “전시관을 둘러본 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게 진짜 목적”이라고 했다. “더 나은 세상이 뭐냐고요? 나와 다른 의견도 존중하고 포용할 수 있는 사회, 어떤 목소리도 눈치 보지 않고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죠.”
까르띠에 코리아는 지난해 5월 보석·시계 명품 브랜드 가운데 처음으로 한국에 공식 온라인 몰을 선보였다. 앞서 2008년엔 아시아 지역 최초로 플래그십 스토어(대표매장)인 ‘까르띠에 메종 청담’을 세울 정도로 한국 시장과 소비자들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 2008년에야 아시아 첫 대표매장을 냈다니 의외다.
- “2000년대 중반만 해도 한국에 대표매장을 낸다는 게 상당히 큰 도전으로 여겨졌다. 가격을 떠나 보석이나 시계는 가방이나 의류보다 좀 더 ‘상징적인’ 의미가 큰 제품이라 구매 동기나 과정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소매사업 총괄을 맡고 있었는데 모든 팀이 올림픽을 유치하듯 밤을 새우며 노력했다. 최종 결과에 얼마나 기뻐했는지 생생하다. 이제 서울은 까르띠에에 없어선 안 되는 중요한 장소가 됐다.”
- 한국 시장을 어떻게 전망하나.
- “지난 10년 사이 한국의 보석·시계 시장은 눈에 띄게 성숙했다. 보석은 단순히 비싼 장신구가 아니라 우리 삶의 한 부분이다. 결혼과 출산, 승진 축하 등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함께 하는 상징적인 물건이다. 어떤 보석을 선택한다는 건 스스로에게 주는, 또는 상대에게 전달하는 나만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 한국은 이렇게 나와 가족, 소중한 사람에 대한 가치를 표현하는 데 능숙한 몇 안 되는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원문보기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32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