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파괴된 환경, 빈부 격차, 불공정한 사회를 보면 젊은 세대가 환멸을 느끼지 않느냐고 물어봐요. 하지만 전 아니라고 말해요. 여러분의 도움으로 내일의 세상이 변할 수 있으니까요. 세상을 바꾸는 도움이야말로 저희 세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에요!”
지난 6일, 할리우드의 차세대 배우로 꼽히는 야라 샤히디(22)는 특유의 밝은 목소리로 미래 세대의 희망을 외쳐 청중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이날 행사는 프랑스의 럭셔리 브랜드인 까르띠에가 여성 창업가를 지원한 지 15주년을 맞아 마련한 자리로, 두바이 세계 박람회 현장에서 진행됐다. ‘세계 여성의 날(3월8일)’을 앞두고 전 세계에서 모인 ‘까르띠에 창업가 동문’들은 그동안의 노력과 성과를 축하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창업 활발해도 ‘부의 편중’ 여전
보석·시계로 유명한 까르띠에가 2006년부터 창업 초창기 여성들을 지원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까르띠에 여성창업 이니셔티브’란 프로그램 아래, 매년 세계 7개 지역에서 수백명의 지원자를 받아 지역마다 3명씩 21명을 뽑는다. 지금까지 62개국 262명의 여성 기업인들에게 약 79억원이 주어졌는데, 이 중엔 6명의 한국 기업인도 있다. 지난해부터는 지역과 별개로 ‘과학&기술’ 분야를 신설해 총 24명을 선발했다.
약 5개월에 걸친 선발 과정은 매우 전문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심사위원단은 투자 전문가 또는 기업을 설립해 본 남녀로 구성된다.
벤처캐피털(VC)인 인비저닝 파트너스 소속으로 2019년부터 심사를 맡고있는 배수현 이사는 “창업하려는 남녀 비율은 거의 반반이지만 실제 투자받는 건 남성이 90%일 정도로 VC업계는 자본의 불균형이 심각하다”며 “여성이 낸 아이디어는 뒤처진다는 편견을 버릴 때 훨씬 더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상을 바꾸는 사업’하는 여성들
심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건 사업을 통해 사회를 바꿔보겠다는 목적이 뚜렷한지,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지다. 돈을 버는 동시에 사회와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른바 ‘임팩트 투자’에 적합한 창업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는 국제연합(UN)이 정한 빈곤 퇴치, 건강과 웰빙, 양질의 교육, 양성평등, 청정에너지 등 17개의 지속가능한 발전목표와도 맞물려 있다.
이날 15주년 특별상을 받은 수상자들 역시 자신이 속한 사회의 어려움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남달랐다.
수도와 전기도 없이 살아가는 농가를 위해 가축을 현금화시켜 현대식 인프라를 설치하는 파리엘 살라후딘(파키스탄), 빅데이터 분석 기술로 에너지를 절약해 연료비와 오염 물질을 줄이는 샬롯 왕(중국), 출산 중 혈액부족으로 매년 3만7000명의 산모가 사망하는 현실에 맞서 오토바이 혈액은행을 운영하는 테미 기와 투보순(나이지리아) 등은 “잠을 못 잘 정도로 힘든 적도 많지만 조금씩 세상이 나아지는 모습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앞서 2019년 조연정 ‘세이 글로벌(Say Global)’ 대표의 경우 한국의 은퇴자들과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세계 젊은이들을 연결하는 플랫폼 사업으로 극동아시아 지역 우승자가 됐다.
지난해부터 한국 여성창업 지원
재원 못지않게 절실한 게 인적·사회적 지원이다. 투자자를 설득하는 말하기부터 경영 리더십, 마케팅과 홍보까지…. 까르띠에 여성창업 이니셔티브는 프랑스의 인시아드 경영대학원과 제휴해 맞춤형 교육을 제공한다. 특히 세계 500여명의 전문가와 동료로 이뤄진 커뮤니티를 만들어 서로에게 멘토-멘티가 되어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게 했다. 까르띠에가 세계 여성 기업인들을 연결하는 글로벌 플랫폼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 결과 기업인들은 2020년 기준 연평균 약 6억원의 매출과 순이익 3200만원을 올리며 선전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까르띠에는 지난 8일 한국에서 두바이 현장의 행사를 영상으로 공유하며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김쎄라 까르띠에 코리아 사장은 “한국의 여성들에게도 단발성이 아닌 장기적이고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지난해 10월 ‘언더우먼 임팩트 커뮤니티’를 출범했다”며 “수많은 여성에게 편견을 깨고 도전해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내라는 응원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언더우먼 임팩트 커뮤니티는 까르띠에 여성창업 이니셔티브와 창업교육 기업인 언더독스가 함께하는 프로젝트로, 창업에 대한 정보와 교육 제공, 업계 관계자들과의 커뮤니티 활동 등이 특징이다. 김쎄라 사장은 “언더우먼 임팩트 커뮤니티를 통해 한국에서 더 많은 스타트업들이 태어나고, 더 많은 여성이 세계 무대로 진출하는 디딤돌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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