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청년들이 창업하지 않는 나라, 일본은 변화할 수 있을까

 

‘청년들이 창업하지 않는 나라’, 일본 시장 진출에 관해 자문을 구할 때 자주 접했던 조언입니다. 그만큼 일본의 경제 침체기가 오랜 기간 이어져 왔음을, 그 가운데 청년들이 불확실성을 줄이는 안전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90년대 버블경제 붕괴 이후 주식 시장 하락, 부동산 시장 침체, 기업 경쟁력 약화를 연달아 겪었던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잘 보여주는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일본 시장에 변화의 물결이 일렁입니다. 일본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스타트업 육성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기성 기업들이 벤처와의 협업을 통해 오픈이노베이션에 나선다는 소식을 심심찮게 볼 수 있죠. 침체기가 지속될수록 반등을 모색하기 쉽지 않은데, 일본은 ‘청년들이 창업하지 않는 나라’라는 오명을 벗어날 길을 찾고 있습니다.
과연 일본은 변화할 수 있을까요? 일본의 벤처 생태계는 정확히 어떤 상황일까요? 이번 글에서는 한국의 10년 전과 비교해 일본 창업 생태계의 현주소가 어떤지 살펴보려 합니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시계를 거꾸로 돌려 10년 전, 2014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회초년생에게 창업의 꿈을 심어 준 ‘K스타트업 모델’

2014년 당시 저는 소셜벤처 창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에 관해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죠. 가족과 주변 친구들은 모두 말렸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비전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 무렵 참석했던 글로벌 창업 포럼이 영감이 돼 줬습니다.
당시 중소기업청 한정화 청장은 해당 포럼에서 K스타트업 모델을 강조했습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같은 선진 모델을 벤치마킹해서 향후 대한민국의 창업 생태계, K스타트업이 아시아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이끌어갈 핵심이 될 것이라는 발표였습니다. 이후 혁신 창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지역마다 순차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고, 2017년에는 중소기업청이 중소벤처기업부로 승격되면서 대한민국 정부 주도의 K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활동들이 본격적으로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미디어에서도 청년 창업을 대하는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공공영역에서 창업가 육성을 위해 선도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던 청년창업사관학교 또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창업에 대한 고정관념에 균열을 만들었습니다. ‘돈이 많아야 할 수 있는 창업’ ‘빚을 내서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 해야 하는 창업’에서 ‘혁신적인 기술과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창업’에 대한 꿈이 대한민국 청년들의 마음 속에서 자라잡던 시점이었습니다.
물론 부모님과 친구의 걱정과 만류도 일리 있었습니다. 90년대 닷컴버블과 IMF를 경험한 세대가 부모가 되면서 창업에 나서는 청년들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K스타트업 모델’이 본격적으로 태동하던 시기에도 강고했습니다. 여전히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은 사회에서 소수 집단에 불과했고, 창업에 대한 국민적 인식 개선이 조금씩 일어났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K스타트업 모델’에 대한 꿈은 한국에서 아시아 국가로 충분히 확장될 수 있었습니다. 2015년 언더독스가 ‘언더독스 창업 사관학교’라는 브랜드로 풀타임 창업교육을 선보였고, 빠른 속도로 우수한 공공기관과 민간 기업 파트너들과 연결되면서 이들을 국내 예비/초기 단계 창업가 육성의 조력자로 승화했습니다. 2017년부터는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몽골 등을 중심으로 창업 생태계 관계자를 초청해 K스타트업 생태계와 언더독스의 창업교육 방법론을 소개했습니다. 아시아 투모로우 네트워크(Asia Tomorrow Network)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2020년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K스타트업 모델’에 대한 꿈을 잠시 접어둬야 했습니다. 국내를 비롯한 아시아 전역에서 코로나 피해를 복구하고 일상을 회복하는 데 집중하던 시기였으니까요.
2022년부터 언더독스는 다시 아시아의 파트너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글로벌 진출을 위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다시금 ‘K스타트업 모델’의 가능성에 도전해볼 타이밍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국가간의 정보 공유를 목적으로 창업가와 투자자, 분야별 전문가를 비롯한 아시아 창업 생태계의 각종 플레이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asiatomorrow.nom)을 세웠습니다. 그러면서 2024년 글로벌 협력의 가장 핵심적인 목표로 ‘언더독스의 일본 시장 진출’을 계획하기 시작했습니다.

 

 

벤처 투자와 창업 지원을 통해 반등을 노리는 일본의 현주소

언더독스 입장에서는 일본의 창업 생태계는 마치 ‘기회의 땅’ 같았습니다. 정부의 스타트업 육성 정책과 대대적인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 일어난다는 현지 소식을 접하며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10년 전 ‘K스타트업 모델’이라는 비전을 목표로 한국 창업 생태계의 진흥을 힘주어 강조하던 발표가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청년 창업을 향한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까지 겹쳐 더더욱 일본의 현주소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2022년 11월 일본 정부는 ‘스타트업 육성 5개년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8,774억 엔(약 7조 7,500만 원) 수준의 스타트업 투자 규모를 무려 10배 이상 늘린 10조 엔(약 88조 4,000억 원)으로 확대함으로써 10만 개의 스타트업업 육성 계획을 제시했습니다, 또한, 스타트업에 출자하는 대기업과 보유 주식을 매각하는 창업자를 대상으로 세제혜택을 제공하는 등 정책적 장치를 마련하기 시작했습니다. 전국 각 지자체와 기업, 대학 등은 창업가 육성을 위한 정책(창업 비자)과 인프라(창업 센터 설립), 프로그램(창업가 육성 등)을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 내에서 창업은 낯선 소재입니다. 일본 방문 전, 파트너 기관을 통해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일본의 청년은 창업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었습니다. 일본은 창업 생태계가 이제 막 시작되는 시점으로 아직까지 일본의 청년들은 창업보다는 취업을 선택하는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으며, 일본에서 스타트업과 혁신 기술은 대학생과 청년보다는 기존의 기술과 시장을 보유한 기업의 역할이라는 인식이 더 크다는 의견이 우세했습니다.

이 시점에 언더독스가 일본의 혁신 창업 생태계 활성화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더더욱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일단 몇 가지 가설을 세우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첫 번째 가설과 전략은, 일본에서 언더독스의 포지션을 ‘창업 교육 전문회사’가 아니라 ‘창업가 데이터 기반의 종합 솔루션, SaaS(Software as a Solution)’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일본의 창업 교육 시장이 아직 초입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언더독스 글로벌 TF는 일본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박람회 ‘스시테크도쿄’에 참석하면서 추가로 가설을 세웠습니다.

 

“일본의 청년은 창업을 하지 않는다”는 말의 정확한 의미나 데이터는 무엇인가?
일본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현재 어느 정도 단계에 와있으며, 어떠한 플레이어들을 중심으로 생태계가 시작되고 있는가?
언더독스의 기술력과 서비스가 필요한, 협력할 수 있는 기업과 기관 파트너는 어떤 곳일까?”

 

현장에서 언더독스는 일본의 스타트업 생태계 관계자들과 적극적으로 네트워킹을 진행했습니다. 일본 현지 정부 및 지자체, 대학 등 창업 지원 기관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넓혔갔습니다. 많은 대화를 통해 우리가 얻고자 했던 질문과 가설에 대해 (아직은 기초적이지만) 유의미한 답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1. 일본의 청년은 창업을 하지 않는다는 말의 정확한 의미(데이터)는 무엇인가?
우리가 얻은 첫 번째 질문의 답변은 ‘마치 10년 전 한국과 같이 일본에서 혁신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은 극소수이며, 그들은 매우 높은 사회적 장벽을 넘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박람회 기간 중 대화를 나눈 거의 모든 사람에게 위의 질문을 던졌을 때 ‘그렇다’는 답변을 100%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말인즉슨, 창업을 하고자 하는 청년이 또는 그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전무하진 않다는 의미였습니다. 혁신을 꿈꾸는 소수의 청년들이 존재했으며, 그들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 또한 극히 일부의 대학과 지자체, 기업이 나름의 접근 방식을 만들어내며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2. 일본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현재 어느 정도 단계에 와있으며 어떠한 플레이어들을 중심으로 생태계가 시작되어가고 있는가?
일본을 비롯한 다른 아시아 국가의 창업 생태계를 학습하는 과정에서 확인한 ‘K스타트업 생태계’의 특징 중 한 가지는, 정부와 함께 대기업의 자본이 창업가(특히 예비/초기 단계) 육성을 통해 청년 일자리 창출, 사회/환경문제 해결 등 사회공헌적 측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언더독스의 창업 교육 B2B, B2G 모델에서 국내 기업과 공공기관, 대학 등 기관의 창업가 육성 참여도는 일본 업계 관계자 입장에서 놀라울 만큼 높은 수치였습니다.
현 시점에서 일본에는 소수의 청년 창업가를 돕는 일부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예술대학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무사시노 대학은 일본에서 최초로 기업가정신 학부 과정을 신설하여 대학생 창업가 육성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나고야 대학 또한 창업에 관심있는 청년을 대상으로 1년간 자기 탐색부터 창업 교육과 해외탐방에 이르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타테모노부동산은 일본 대학교 협력하여 캠퍼스 내 창업센터 건물을 짓고 함께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3. 언더독스의 기술력과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협력할 수 있는 기업과 기관 파트너는 어떤 곳들이 있는가?
언더독스의 창업교육 프로그램을 비롯한 벤처 생태계 조성에 필요한 역할, 기능을 할 수 있는 기업과 기관은 충분히 파트너사가 될 의향이 있다는 걸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자체적으로 생태계 조성을 위해 목표를 세우거나 기획-운영-지원 등의 구조를 보유한 곳이라면 구체적인 협업 대상으로 연락처를 교환했습니다. 이들은 일본의 비즈니스 문화 안에서 협력을 위해 한국 기업인 언더독스가 얼마나 큰 신뢰(ex : 데이터와 성과를 통한 입증, 신뢰할 수 있는 중장기적 계획, 한국에서의 성공에 머물지 않고 일본 현지에 맞는 서비스와 콘텐츠 재구성 등)를 보여줄지 궁금해했고, 이것이 일본 시장 진출에 핵심적인 과제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청년들이 창업하지 않는 나라, 일본의 변화를 촉진하려면

지난 5월 행사 참석차 일본에 방문하면서 한국과 일본의 비즈니스 문화가 다르다는 걸 일부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은 가장 효율적인 프로세스를 통해 빠르고 가시적인 결과를 목표로 삼는 반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환경 속에서 일본의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은 신뢰와 관계성을 중시했습니다.

그러니 일본 창업 생태계의 문을 두드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1) 일본의 세세한 비즈니스 문화를 이해하고 2) 그들의 생태계 구조와 관계성 안에서 3) 언더독스가 가진 강점을 통해 일본의 창업가 육성에 기여할 수 있는 명확한 가치 제안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소규모로 협업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와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입니다. 일본에서는 창업교육 전문 기업으로 언더독스의 철학과 비전, 창업교육 기획과 운영 측면에서 본질적인 콘텐츠와 효과성을 입증하는 것이 강조돼야 한다는 다음 가설을 세울 수 있겠습니다. 이틀 간의 짧은 현장 방문을 통해 학습한 내용을 확장시키고, 새로이 맺은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잠재 파트너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데서 출발하려 합니다.

일본의 변화를 이해하면서도 일본 고유의 문화를 수용하는 것은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는 데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9년간 현장에서 수많은 파트너들과 함께 창업가를 육성하면서 한국 전역,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특유의 문화와 문법을 이해하는 것이 비즈니스의 첫 단추라는 걸 배운 까닭입니다. 어느 때보다 큰 변화를 앞둔 일본에서 위대한 첫 걸음을 내딛고자 고군분투하는 창업가, 그들을 돕는 페이스메이커(조력자)들을 위해 언더독스의 노하우를 연결하고자 합니다. 언더독스가 전혀 다른, 한편으론 가장 가까운 일본의 창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촉매제가 되길 기대합니다.

 


기고자 : 언더독스 글로벌 TF 박대은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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