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대 스타트업 커뮤니티 디렉터가 말하는 ‘일본 창업 생태계의 변화’

(이미지출처=RYUSUKE KOMURA)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창업’ 혹은 ‘스타트업’은 낯선 단어였다. 거품 경제 붕괴 이후 1990년대부터 이어진 경기 불황은 일본의 창업 엔진을 꺼뜨리는 데 충분했다. 여러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Statista 조사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두려움 없는 기업가” 순위에서 일본 응답자의 12.7%만이 ‘지금은 기업가에게 적기’라고 답했다. 6.2%는 기업가가 될 계획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국 응답자의 41%가 사업을 시작할 기회를 발견했다고 답했고, 7.5%가 ‘실패가 두렵지 않다’고 답했다는 점을 비춰봤을 때 일본 내 분위기가 얼마나 보수적인지 엿볼 수 있다.

 

2022~2023년에 걸친 GEM 조사에서도 비슷한 여론이 드러났다. 18~64세 사이의 일본 성인 응답자 중 8분의 일만이 ‘6개월 내에 사업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답변했다. 아래 그래프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수치는 헝가리, 스페인 등 비교적 그 응답자 수가 적은 타 국가보다도 일본 응답자의 수치가 확연히 낮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러한 일본 내 기류는 바뀔 수 있을까? 게임의 룰이 바뀌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일본 최대 스타트업 커뮤니티 Venture Cafe Tokyo에서 디렉터로 일하는 류스케 코무라는 “일본에 기업가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다. 현재 창업가와 투자자, 대기업 임원과 대학 관계자들이 다 같이 모이는 ‘목요 모임’(Thursday Gathering)을 주최하는 Venture Cafe Tokyo는 연결을 통해 일본 내에서도 혁신이 일어난다는 기치를 내걸고 2018년 일본에 자리를 잡았다.

 

과연 창업, 스타트업에 대한 일본의 분위기는 반전될 수 있을까? 이미 변화는 시작됐을까? 변화하고 있다는 그 징조는 무엇이고, 변화가 필요하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언더독스는 류스케 코무라 디렉터와 화상으로 만나 일본 내 비즈니스 생태계의 변화와 기업가정신이 일본에 뿌리내리는 현황에 대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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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Venture Cafe Tokyo 에서 디렉터로 일하는 Ryusuke Komura 입니다.

Venture Cafe Tokyo는 일본 창업 생태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커뮤니티입니다. 학생, 연구가, 직장인, 창업가, 투자자까지 실로 다양한 사람들이 Venture Cafe Tokyo에 모입니다.(social gathering) 이 곳은 2009년 보스턴에서 시작된 ‘Venture Cafe’ 프로젝트가 2018년 도쿄에 자리잡으면서 시작됐습니다.

 

Q.Venture Cafe Tokyo에서 일하기 전에는 어떤 길을 걸어오셨나요?

 

저에게는 크게 3가지 정체성이 있습니다.

①창업가 : 첫 직장은 일본 대기업의 사내 기업가였습니다. 저는 SaaS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출시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또한 팀원들과 함께 보스턴과 일본에서 두 개의 비영리 단체를 설립했습니다.

②서포터 : 지난 10년 동안 저는 사람들이 기업가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2018년에 벤처 카페 도쿄의 초기 멤버이자 프로그램 매니저로 합류했습니다.

③교육자 : 저는 2015년에 글로비스라는 회사에서 컨설턴트로 일했습니다. 현재는 호세이대학교의 교수진으로 재직 중이며, 주로 MBA 프로그램에서 기업가 정신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본에 기업가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

Q.대부분 ‘기업가정신’에 관한 정체성이네요. 여기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사람들의 인생이 변화하는 데(transformation) 기업가정신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꼭 스타트업이 아니라도 기업가라는 삶의 방식을 통해 누구든지 이전과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저는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한국과 비슷하게) 일본에서 학생들은 경쟁적인 입시를 거쳐 대학에 진학한 후 대기업에서 일하는 걸 희망합니다. 저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전통적인 일본 기업에서 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2013년쯤 해외에서 MBA 학위를 받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시에는 ‘기업가 정신’ 자체에 대한 열정보다는 신사업을 시작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합리적으로 내릴 수 있는 결정이었습니다.

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다양한 MBA 프로그램을 조사하던 중 기업가정신 교육에 대한 명성이 높은 밥슨 칼리지를 알게 되었고, 결국 그곳에 합격한 후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Q.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공부하며 살아가는 경험이 생각의 전환을 가져왔을 듯합니다.

 

실제로 미국 문화와 교육은 토론을 통한 상호작용을 강조합니다. 이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모범생이 되고 칭찬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익숙해져 토론 수업 중에도 ‘좋은 학생’처럼 완벽하게 말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수업 중에 제 소박한 주장에 대해 다른 학생들이 “그래서 뭐?”, “어떻게 생각해?” 같은 반응을 자주 접하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사고방식이 바뀌는 경험이었습니다. 비즈니스에 대해 배우면서 다른 사람의 생각이 아닌 제 생각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면서 제 사고방식이 바뀌었죠. 그렇게 저는 기업가 정신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되었습니다.

 

 

창업에 대한 일본 내 분위기가 변화하는 근본적인 원인

Q.아무래도 일본 문화, 특히 기업 문화가 보수적인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창업에 관해서도 아직은 일본 내에서는 낯설어하지 않나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 내에서 ‘스타트업’이라는 단어조차 흔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보수적인 분위기가 점차 바뀌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예를 들어, 닛케이 같은 일본 주류 매체에서 스타트업에 관한 소식을 1면에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내 대기업 또한 스타트업과의 협업에 점차 개방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일본무역협회가 나서서 스타트업을 지원하면서 소기업과 대기업의 비즈니스 협력을 장려하는 서포터이자 변화의 대변자(advocate)로 기능하기도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하자면, 기시다 정부는 2023년부터 <스타트업 육성 강화 5개년 계획>에 들어섰습니다. 이 계획은 2027년까지 스타트업 투자액을 10조엔 규모로 늘리겠다는 취지를 담았습니다. 장기적으로 10만 개의 스타트업과 100개의 유니콘 기업(기업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을 배출한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세워졌습니다.

도쿄 시청의 경우 5년 내에 도쿄 스타트업을 10배 늘리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특히 시부야를 ‘스타트업 도시’로 만들고자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도쿄는 해외 스타트업의 일본 진출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 같은 기관에서도 벤처 액셀러레이터를 촉진하고 있고, 일본 내 각 대학에서는 기업가정신 및 창업에 관한 교육에 대한 예산이나 수요가 늘고 있고요.

(아직은 보편적이진 않지만) 도쿄대 같이 유망한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이 스타트업에 취업하는 케이스도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보통 일본 명문대 학생들은 공무원이나 대기업 직장인을 희망하는 편인데요. 대중적으로 창업에 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걸 요즘 들어 체감합니다.

 

Q.일본에서 벤처 비즈니스에 대한 분위기가 이처럼 전방위적으로 바뀐 데 근본적인 원인이 있을 듯합니다. Ryusuke Komura 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좋은 질문이네요. 제 개인의 의견으로 이 이야기를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일단 일본은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습니다. 2023년 일본 정부가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1억2500만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는 29.1%에 달했습니다. 사상 최고치였습니다. 전체 인구 중 10% 이상이 80세 이상이라고 하죠. 확실히 일본은 ‘나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본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지속해서 줄어들고 있습니다. 2023년 일본 내각부 발표에 따르면 일본의 1인당 명목 국내총샌상은 3만4064달러였습니다. 전년 수치(4만34달러)와 비교했을 때 줄어든 규모입니다. 결국 일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8개국 중 21위를 차지했습니다. 생산인구 자체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1인당 GDP에 일본 내 추세가 미리 반영된 것입니다.

하지만 기성 대기업이 비즈니스 혁신을 일으키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기업에 얽혀있는 복잡한 이해관계와 매출 중심 구조로 인해 (당장의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혁신적인 시도를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일본 내) 창업가에게 혁신을 부탁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들이 혁신의 엔진입니다. 대기업은 스타트업과 협업을 하거나 벤처를 인수하는 등 다른 형태로 혁신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Q.일본 경제와 비즈니스 생태계의 구조적 특성으로 인해 벤처 비즈니스가 주목받는 셈이네요.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본 내 청년들의 가치관이 바뀌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봄 직합니다.

확실히 21세기 들어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제가 대학생이었을 때만 해도 부모님은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특명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자식에게도 동일한 미션을 기대했습니다. 번듯한 기업에 취업해서 열심히 돈을 벌며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가치관이 강했습니다.

(여전히 사회적인 빈곤 문제가 존재하지만) 20세기에 비해 일본 사회는 성숙했습니다. 당장 끼니를 굶는 걸 걱정하는 빈곤층은 과거보다 확실히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신세대의 가치관은 기성 세대의 그것과는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생계를 넘어 개인의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 생기고 있습니다.

기업가정신은 이러한 가치관 변화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자기 삶의 주인이 돼 무언가 성취하는(fulfilling)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수요가 일본에서도 늘어난 것인데요. 이러한 대안적 가치관이 창업가, 기업가정신, 벤처 비즈니스를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본 내에서 스타트업이나 창업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글로벌 스타트업이 일본 시장에 진출할 때 필요한 것

Q.일본 내 변화의 흐름 속에서 Venture Cafe Tokyo가 지향하는 바는 궁극적으로 무엇인가요?

 

우리는 혁신의 적이 고립(Isolation)이라고 생각합니다. 혁신가들을 연결함으로써 혁신이 가능해진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CIC Tokyo라는 센터에서 Venture Cafe Tokyo는 매주 ‘Thursday Gathering’이라는 커뮤니티 행사를 주최합니다. 매번 약 400명이 이 행사에 참석하는데요. 일본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벤처 이벤트라고 자부합니다.

해외 스타트업이 일본 시장의 문을 두드릴 때도 이 행사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인공지능 스타트업 Wrtn(뤼튼)이 일본 시장에 진출할 때 Venture Cafe Tokyo를 통해 론칭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Venture Cafe Tokyo는 글로벌 기업이 일본 시장에 진입하는 첫 관문이자 로컬 생태계의 역할을 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Q.주로 어떤 사람들이 Thursday Gathering에 참석하나요?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나 창업가가 많습니다. 나머지 25%는 (스타트업 종사자가 아닌) 직장인이나 기업 임원, 25%는 대학생이나 연구자가 Venture Cafe Tokyo 의 정기 이벤트에 참여합니다.

 

Q.일본 시장 진출을 고려하는 글로벌 창업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일단 일본 현지에서 직접 업계 이해관계자들을 만나 네트워킹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본 비즈니스 관습은 아무래도 신뢰(trust)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나 진지한 협업을 하기 위해서는 일본 비즈니스 생태계가 ‘신중하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합니다. Thursday Gathering 같은 행사를 통해 먼저 업계 관계자들과 안면을 트면서 상호 신뢰를 개인적으로 축적한 후에 비즈니스 협의를 본격적으로 진행하는 걸 권합니다.

또한 일본의 경우 여전히 일본어 커뮤니케이션을 선호하는 이해관계자들이 존재합니다. 영어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지만, IR이나 세일즈 미팅 등 비즈니스적으로 중요한 자리에서는 일본어 소통이 강점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 단순히 일본어로 말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결국 비즈니스 로컬라이제이션이 관건입니다. 일본 마켓과 자사의 사업 전략을 모두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는 현지 인력을 구하는 게 급선무입니다. 일본 시장에 대한 이해도와 자사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이해도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로컬 매니저가 필요합니다.

 

 

벤처 카페 도쿄의 역할과 앞으로 계획은?

Q.어떻게 현지 사정과 비즈니스에 모두 밝은 로컬 매니저를 채용할 수 있을까요?

 

좋은 인재를 찾으려면 결국 현지 커뮤니티에 속해야 합니다. (물론 그래도 인재 찾기는 어렵지만…!) 그래서 Thursday Gathering이 혁신가를 연결하는 핵심적인 역할이자 글로벌 비즈니스가 일본 시장으로 통하는 첫 걸음이 되고자 합니다. 일본의 벤처 생태계가 성장하고 있고, 이러한 변화에 국내외 주요 플레이어들이 관심을 갖는 지금이 Venture Cafe Tokyo가 활약할 적기라고 생각합니다.

 

Q.Venture Cafe Tokyo의 향후 계획에 대해 들려주세요.

 

도쿄에서 목요 모임 행사를 꾸준히 이어가고 나고야, 쓰쿠바, 기후, 오사카, 후쿠오카 등 일본 전역의 주요 도시에서 추가로 소셜 이벤트를 개최하여 벤처 생태계의 무대를 넓혀갈 계획입니다.

또한 2024년에는 ‘로켓 피치의 밤’을 다시 개최할 예정입니다. 로켓 피치의 밤은 프리시드부터 시드 단계의 스타트업 창업자가 자신의 사업을 발표하는 일본 최대 규모의 피치 이벤트 중 하나입니다.

또한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할 계획입니다. 이는 기업가 정신과 스타트업 교육에 대한 벤처 카페 도쿄의 역할을 확대하기 위한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벤처 카페 도쿄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혁신 생태계를 위한 개방형 인프라로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개개인이 행복과 꿈을 찾도록 돕는 것은 저 개인에게도 중요한 사명입니다. 저는 기업가 정신이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타트업 창업자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사회를 혁신하는 ‘기업가정신’을 추구하기를 바랍니다.

 

*일본 창업 생태계와 비즈니스 기회에 대해 가장 생생하게 접할 있는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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