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출판업계가 전에 없는 경사를 맞았습니다. 작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기 때문이죠. 주요 온라인 서점 홈페이지들은 한때 접속이 안 될 정도로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사람들이 줄을 선 모습도 화제가 됐죠. 독립서점들도 모처럼만에 북적였고요.
하지만, 출판업계는 여전히 힘듭니다. 독립서점 대표들 사이에서는 ‘평균 생존주기 2년’이라는 말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돌아다니죠. 책을 읽는 사람들은 줄어드는데, 글을 쓰고 책으로 펴내는 존재들은 늘어나니까요. 오랜 업력의 대형 플랫폼부터 동네 책방까지, 출판업계는 지금도 미래를 고민 중입니다.
그렇기에 2006년부터 지금까지 사랑받는 일본의 출판사, 미시마샤(ミシマ社)는 어떻게 생존했는지 궁금해집니다. 겉으로만 보면 규모도 작고, 어딘가 허술해보이거든요. 대표가 직접 쓴 책에 이런 대목이 있을 정도죠.
“회사의 대표는 엑셀을 쓸 수 없고, 사원은 영수증 쓰는 법을 모른다. 그 결과, 당연하게도 사업계획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다 쫓아와서 뭐라 할 정도로 영업자의 얼굴 표정은 우울하다.”
_미시마 쿠니히로, <좌충우돌 출판사 분투기> 중에서
하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20년 가까이 생존한 이유들이 보입니다. 업계 관행에 의문을 가지고, 고유한 방법으로 고객들과 유의미한 관계를 만들어왔거든요. 직원 11명, 1년에 20권 정도만 출판하는 미시마샤는 어떻게 ‘작은 거인’이 될 수 있었을까요?
💡인사이트 요약
- 자신이 속한 업계에서 벗어나 시장을 바라보면,새로운 해답이 보입니다.
- 비즈니스 파트너와 고객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갈 때, 지속가능한 성장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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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정의] ‘가치’보다 ‘판매’가 먼저인 구조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미시마샤를 창업한 미시마 쿠니히로 대표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지만, 처음부터 출판업계에서 일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다만 ‘책을 좋아하니,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런 마음을 가진 그는 한 출판사의 편집자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그가 취업한 때는 1999년. 일본에서 ‘출판 불황’이라는 말이 처음 언급되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판매부수가 줄어들고 폐업하는 서점들이 계속 늘어나면서, 미시마 대표도 이 현상에 주목했죠. 그러다가 오랫동안 변하지 않던 일본 출판업계의 구조가 원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당시 일본 출판사들은 ‘총판사’라는 대형 도매업체를 거쳐서 서점과 책방 등에 신간을 판매해 왔어요. 총판사가 가게 규모 등을 고려해 수량을 조절해서 책을 분배했죠. 그러다 인터넷의 확산 등으로 독서율이 낮아지면서, 아래의 악순환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 책을 읽는 사람이 줄어들어 업계 매출 감소
- 감소한 매출을 메꾸기 위해 신간 출간 증가
- 신간이 늘어나면서 반품도 증가
- 반품으로 인한 손해를 보충하기 위해 신간을 더 많이 출간
미시마는 이런 악순환 때문에 출판업계가 책을 만들어서 파는 것에만 집중하게 됐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업계의 문법’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제대로 된 책을 공들여 만들고, 독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믿었죠. 그런 자신의 철학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미시마샤 출판사였습니다.
“원래 출판이라는 건 단순합니다. 재미있고 좋은 책을 만들어서,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에게 읽히는 거죠.
하지만 요즘 출판사들은 연간목표를 미리 정하고, 그걸 위해 편집자 한 명당 몇 권을 만들어야 한다는 발상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잘 팔리는 책이 하나 나오면, 그것과 비슷한 책만 몇 권이 나오죠. 저는 그렇게 책을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_미시마 쿠니히로, 그리조아 출판사 인터뷰에서, 2012.9
[새로운 관점] ‘관계’에 있어서는 비효율이 지름길입니다
미시마샤의 가장 큰 특징은 직거래입니다. 동네 책방부터 전국구 서점까지, 일일이 방문해서 영업을 하는데요. 굉장히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미시마 대표는 사실 그 반대라고 말합니다. 거래처를 직접 만나면서 독자를 더 잘 이해하게 되거든요.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돈독한 관계가 오래 유지돼서 좋고요. 미시마 대표는 직거래의 장점을 아래와 같이 정리했습니다.
- 각 거래처별로 도서 공급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다.
- 거래처 사정이나 도서 성격 등을 고려해 적정 부수를 협상할 수 있다.
- 거래처도 판매를 책임지게 되어 반품을 최소화하려 노력하게 된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미시마샤가 그 동안 만난 거래처는 1,000여 곳이 넘습니다. 서점이 대부분이지만 카페, 숙소 등 거래처의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어요. 심지어 3대째 운영 중인 후쿠오카의 아리타 주유소에도 미시마샤의 책이 진열돼 있죠. 지역 서점의 중요성을 인식한 주유소 사장이 미시마샤에게 연락해 거래가 성사됐다고 합니다.
책의 장르를 가리지 않으면서도, 정성을 들여 만드는 것도 미시마샤의 특징입니다. 보통 소규모 출판사들은 특정 장르에 집중하는데요. 미시마샤는 그림책부터 소설과 시집, 에세이, 역사와 철학 도서까지 다양한 책을 취급합니다. 그러면서도 책 하나하나의 테마, 제본, 판형, 디자인을 꼼꼼하게 기획하죠. 그렇기에 미시마샤는 업계 평균보다 훨씬 적은 책을 펴내지만, 꾸준하게 사랑받습니다.
미시마 대표는 이런 철학을 ‘일책입혼(한 권에 영혼을 담는다)’이라고 말합니다. 굳이 책 하나하나에 시간과 공을 들일 때, 책의 가치를 제대로 전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렇게 정성 들여 만든 책과 어울리는 가게를 직접 만나 소통하니, 거래처 입장에서도 고객에게 설득력 있게 책을 소개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어떻게 하면 독자들에게 우리 책을 더욱 제대로 전할 수 있을까?’를 정말 많이 생각합니다.
‘책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팔 수 있을까?’라는 공급자적인 생각과는 출발점이 다르죠.
이런 생각을 기반으로 출판사를 운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독자와도 소통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_미시마 쿠니히로, 스몰브랜더 인터뷰에서, 2024.8
[차별화] 고객은 판매 대상이 아니라 동료입니다
미시마샤 신간을 구매하면 작은 보너스를 같이 받게 되는데요. 직원들이 손으로 쓰고 그린 소식지 ‘미시마 통신’입니다. 한 권의 책을 만들며 직원들이 느낀 점, 브랜드 뉴스, 이벤트 안내 등을 담고 있죠. 새로운 책을 낼 때마다 그 책에 맞는 테마로 만들기에, 매번 컨셉과 내용이 달라져요. 그렇기에 기존 고객들에게는 브랜드가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를 줍니다. 신규 고객에게는 예상 못 한 감성 포인트가 되어주죠.
2013년부터는 ‘미시마샤 서포터즈’라는 멤버십도 운영 중이에요. 1년간 일정 금액을 후원하면 서포터즈만을 위한 대표의 편지,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소감, 브랜드를 운영하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받아볼 수 있죠. 브랜드의 솔직한 메시지를 접하는 서포터즈들은 미시마샤라는 존재와 친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고, 더욱 브랜드를 응원하게 됩니다.
출판사의 틀에서 벗어난 이벤트들도 선보입니다. 동네 목욕탕에서 진행한 목욕 도서 팝업스토어, 에세이 문장 전시회, 카페 콜라보 등 책의 성격에 따라 달라지는데요. 이런 이벤트들도 직원들이 직접 발로 뛰며 준비하고 진행합니다. 브랜드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찾아가고, 기억에 남으려는 노력인 거죠.
미시마 대표는 여러 인터뷰에서 ‘재미’를 강조합니다. 만드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재밌어야 브랜드와 고객의 관계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메시지죠. 고객을 물건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거래 대상이 아닌, 함께 성장하는 동료로 바라보는 미시마샤의 관점이 돋보이죠. 그렇기에 고객들은 미시마샤에게서 진솔함을 느끼고, 트렌드 등과 무관하게 브랜드를 지지해줍니다. 미시마샤가 20년 가까이 자신만의 길을 지켜올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미시마샤 출판사에게서 배우는 [액션 노하우]
- 판매량을 최우선시하는 공급자 관점에서 벗어났습니다.
- 미시마 대표는 출판업계에서 일하며 업계의 불황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로지 판매만을 위해 책을 찍어내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 이를 위해 미시마 대표는 ‘일책입혼’이라는 원칙을 세웠어요. 영혼을 담아 정말 가치 있는 책을 만들고, 필요한 고객에게 선보인다는 것이었죠.
- 이해관계자들과 인간적으로 연결돼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 미시마샤는 총판을 거치는 대신 거래처들을 직접 만나 영업했습니다. 이를 통해 각 매장에 알맞은 책을 적절한 수량에 공급할 수 있었죠.
- 대표와 직원들도 손으로 쓴 소식지, 직접 준비한 이벤트 등으로 고객에게 말을 건넵니다. 그랬기에 사람들도 진정성을 느끼고, 미시마샤를 응원하는 팬이 됐죠.
🏃 [언더독스 액트프러너]는 세상의 문제를 새로운 관점으로 정의해 자신만의 솔루션을 실행에 옮긴 실행가들에 주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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