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창업이 지역 소멸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EP.01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문제는 단연 인구감소이다. 대한민국의 인구는 2020년까지 5,184만 명까지 성장했으나,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며 지난 해에는 5,132만 명으로 감소했다. 합계출산율 또한 0.72명이라는 전례 없는 수치를 기록하며 OECD 국가 중 저출산 · 고령화 · 인구감소 문제가 가장 빠르고 심각하게 진행 중인 국가가 되었다.

 

인구감소는 국가 경쟁력을 결정짓는 ‘노동 가능 인구’ 수의 감소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서울대학교 조영태 교수에 따르면 한반도에서 노동인구가 가장 많았던 시점은 2018년으로 약 2,800만 명이었다. 2032년까지 충청도와 부산시의 인구 전체를 합한 550만 명의 노동인구가 감소하게 된다.

정부는 지난 십수년간 수백조 원의 예산을 투입했으나 출산율 감소세는 계속되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의 저출산 문제는 경제 · 사회 · 문화적 이슈가 뒤섞여 있는 난제로 해석되고 있다. 젊은 층의 경제적, 정서적 부담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외에도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사회적 편견, 가부장적 가족문화,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노동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됐다는 것이다.

 

저출산의 원인 중 하나로 유례없이 수도권의 높은 인구 밀집도가 꼽히고 있는데, 이처럼 높은 인구 밀집도는 지역 소멸이라는 또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정작 수도권에서는 지역 소멸 문제를 체감하기 어려운데, 이는 역사상 가장 많은 청년 인구가 수도권에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 소멸은 이미 시작되었고, 지역 학교들은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이는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 될 문제다. 지역의 청년세대가 없다는 것은 지역의 미래를 고민하고 짊어질 사람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번 아티클에서는 다양한 글로벌 프로젝트 사례를 통해 지역소멸을 방지하기 위한 솔루션을 살펴보고자 한다. 지역소멸 문제와 대응 방안에 대해 함께 고민하며 작은 실마리를 찾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1. 스페인, 바르셀로나 – 산 안토니 시장

 

스페인 바르셀로나 ‘라 리베라(La Ribera)’지역에 위치한 산 안토니 시장은 지역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스페인의 대표적인 전통시장이다. 1848년부터 무려 135년의 역사를 지닌 산 안토니 시장은 2009년에 위생 및 시설 관리의 어려움으로 폐점되었으나 2018년 경 진행된 바르셀로나 시의 ‘도시 재생 사업(Mercat de Barcelona)’을 통해 부활했다.

 

산 안토니 시장은 도시 재생 사업의 대표적 성공 사례 중 하나로, 현대화된 도심 속에서 지역 커뮤니티와 소상공인이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시장 모델을 제시했다.

 

(이미지 출처=출처 : Mercat de Sant Antoni, la rehabilitación del mercado más sostenible de España | Arquitecturas (expansion.com))

 

산 안토니 시장은 바르셀로나 시청, 지역 시장 연맹, 시장 거래자협회와 길드조합 등 다양한 조직의 유기적 협업을 바탕으로 운영된다. 그중 시청 산하 비영리기관인 바르셀로나 시장 연구소는 산 안토니 시장에서 가장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주체로 시장 혁신을 위한 가치경영, 젠더 정책, 투명성, 다음 세대 지원 등을 주요 이니셔티브로 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특히, 관광객이 아닌 지역 주민 중심의 시장 활성화 계획을 수립했다. 시장 내 아동 청소년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ESG 프로젝트, 백혈병 환아 지원사업 등의 지역 커뮤니티 활동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이유다.

 

이를 통해 시장은 상업적 공간을 넘어 지역의 문화적 유산과 주민 커뮤니티를 보유한 진정한 혁신의 허브가 되었다. 현대적 시설과 서비스를 접목하여 시장을 지역 축제의 핵심 거점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결과였다. 특히 전통시장 본연의 가치를 유지하며 ‘주민과 상인이 중심이 되는’ 시장 활성화 전략을 선택한 것이 프로젝트 성공의 주요한 요인으로 보인다.

 

이는 국내에서 지역경제 활성화의 주된 전략으로 관광 활성화를 선택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화려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통해 관광객을 유치하는 방식은 단기적으로 매력적인 선택지일 수 있다. 하지만, 외부인의 재방문을 유도하기 위해 매번 새로운 관광 콘텐츠를 개발하는 방식은 지속되기 어렵다. 꾸준한 자본의 투입이 필요할 뿐더러 통제가 어려운 외부변수에 대한 관리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산 안토니 시장은 시장 활성화를 위한 조직의 구성, 기획의 주체, 참여 대상에 있어 지역 주민과 상인들에게 초첨을 맞췄다. 이는 장기적으로 시장의 지속성을 가장 깊이 고민하고 지속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구조로 이어졌다.

 

이처럼 지역의 지속적 혁신을 위해서는 단기적 성과를 요구하는 조급함보다는 지역의 변화를 중심에서 이끌어갈 수 있는 주민 중심의 건강한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이 주도하고 참여하는 문화로서의 혁신이 진정한 혁신인 셈이다.

 

관광 활성화보다 주민 중심 커뮤니티를 선택하여 지역의 진정한 허브로 거듭난 도심형 시장 혁신의 대표적 사례 ‘산 안토니 시장’. 우리는 지역의 지속 가능한 혁신에 있어 주민 주도형 커뮤니티 구축을 위한 충분한 노력과 자원 투입이 중요하다는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2. 프랑스 파리 – 15분 도시 정책

 

2020년 프랑스 파리시는 코로나의 지속적인 여파로 인한 지역 경제 활성화 대책으로 ‘15분 도시(15 Minute City)’ 전략을 채택했다. 골목 상권의 활기를 되찾음과 동시에 주민 삶의질을 코로나 이전의 상태로 회복하고, 더 나아가 자동차 사용량 감소를 통해 탄소 배출량을 감축하는 것이 주된 목표였다.

 

‘15분 도시’는 2016년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소르본 대학 경영대학원의 부교수 카를로스 모레노(Carlos Moreno)가 창안한 개념이다. 모레노 교수는 ‘15분 도시’의 개념을 ‘가까운 지역에서 살고 배우고 번영하는 데 필요한 필수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제공하는 것’으로 요약했다. 15분 거리 내 직장, 식료품점, 의료 시설 등 기반 시설까지 도보 또는 자전거를 통해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미지 출처=출처: https://www.paris.fr/dossiers/paris-ville-du-quart-d-heure-ou-le-pari-de-la-proximite-37)

 

‘15분 도시’를 정책으로 도입한 파리는 220만 명의 시민이 이용하는 공공 공간의 66%가 대중교통을 위한 인프라로 사용되고 있었으며, 자가용을 통해 이동성이 향상된 시민의 비율은 17%에 불과한 상황이었다. 시는 ‘15분 도시’ 정책을 통해 2024년 올림픽까지 ① 상젤리제(Champs-Élysées)를 포함한 골목 상권을 주민 친화적으로 탈바꿈 ② 오피스, 어린이집, 작업장, 카페 및 병원 등의 시설을 주거 공간으로 전환 ③ 주차시설을 녹지 공간으로 재생하는 3가지 목표를 발표했다. 또한 도시농업 강화를 통해 지역 주민과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친환경 교육 및 커뮤니티를 확산하는 것 또한 정책의 주요한 방향으로 설정했다.

 

이러한 정책 방향을 수립하는데 있어 파리시는 시민 중심의 위원회를 구축, 시민 공모를 통해 도시혁신 아이디어를 모았고 이를 실제 적용하는 과정에서도 시민의 직접 참여를 유도했다. 이를 통해 이달고 시장과 ‘15분 도시’ 정책은 파리 시민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고, 이후 성과에 대한 기대감 또한 높일 수 있었다.

 


 

3. 일본 마츠도 – 마츠도국제 과학 예술 페스티벌

 

마츠도시(City)는 1997년 미래 사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도시의 중장기 발전 방안으로 ‘마츠도시 기본 구상(Matsudo City Fundamental Concept)’을 도입했다. 여섯 가지 주요 이니셔티브로 지역 사회 연계, 복지기반 사회 구현, 차세대 양성을 위한 교육 문화 환경 조성, 쾌적하고 안전한 삶, 매력적인 도시 조성과 산업 고도화, 안정적인 도시 경영과 행정으로 삼았다. 일본 특유의 적극적인 시민사회 활동을 전개하는 주민자치회(지치카이)가 중심이 되어 지역 발전에 참여하는 것을 비전 달성의 주된 방식으로 설정했다.  소수의 주민만 참여하는 일회성 프로그램과 달리 적극성을 띄는 발전된 개념이다.

 

이러한 방향 아래 탄생한 것이 바로 ‘마츠도 국제 과학 예술 페스티벌’ 이다. 이 프로젝트는 지역 아티스트 요코 시미즈(Yoko Shimizu)를 비롯한 지역 커뮤니티에서 첫 이니셔티브를 발족했다. 전 세계의 아티스트가 참여하는 국제적인 행사로 만들기 위해 전문 기관인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의 협력을 받아 프로젝트를 기획 했다.

 

(이미지 출처=科学と芸術の丘 – Matsudo International Science Art Festival (science-art-matsudo.net))

 

지역 예술가들로 구성된 커뮤니티 스타트업 ‘제로 팩토리얼(Zero Factorial)’이 운영위원회를 맡고, 지역의 다양한 기관과 주민은 행사 운영을 위한 자원 봉사자와 관람객으로 참여하는 방식이었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주민의 참여 비중이 높아졌고, 2022년부터는 지역 주민이 운영위원회의를 맡으며 직접 기획과 운영을 담당할 수 있는 구조로 개편했다. 어린 학생부터 지역 예술가와 청년, 가족 단위의 방문객까지 다양한 그룹의 주민참여가 활성화되었고, 페스티벌은 외부 전문가에 의한 외부인을 위한 축제가 아닌, 지역 주민이 주도하는 지역 축제이자 전 세계 방문객의 발길을 이끄는 국제적인 행사가 되었다.

 


 

지역에 대한 애착과 진정성을 기반으로 하는 로컬 창업가를 통해 지역은 방문하고 싶은 매력적인 곳이 될 수 있다.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활력을 되찾는 동시에 지역경제 활성화의 기초가 되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다. 고루함이 가득한 오래된 거리에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새로운 공간이 생기고, 지역 주민은 옆 동네까지 먼 길을 가지 않아도 되는 이점이 생긴다. 지역에서 이러한 작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곧 지역 혁신의 가장 기초가 될 수 있다.

도심 대비 시장 규모가 작고, 새로운 기회를 찾는 것이 어려운 지역에서는 함께 변화를 꿈꾸며 만들어가는 여정을 함께 할 동료, 즉 ‘커뮤니티’가 가장 필요하다. 커뮤니티에는 창업가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지역 주민과 지방정부, 지역 내 다양한 기관은 물론이고, 외부로부터 새로운 자원과 전문성을 불어넣을 수 있는 수많은 조력자를 필요로 한다.

지역마다 특유의 역사와 문화, 다양한 형태의 자산이 존재한다는 것은 로컬창업 관점에서 여전히 새롭게 해석되고 발굴될 수 있는 보석과 같은 가능성이 전국 곳곳에 널려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구감소와 청년층의 이탈로 동네가 사라지는 상황을 목전에 두고 있는 지역이 많다.

 

언더독스는 지역 변화를 위해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파트너들과 함께 창업가가 중심이 되는 지속 가능한 지역 발전 모델을 발굴하는 역할을 지속해 나갈 것이다.